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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거래·신뢰 없인 보석 못 팔아요” 해리 김 K&K파인주얼리 대표

문자 하나를 받고 고가의 제품 구매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이런 세일즈 방식은 ‘제품’보다는 ‘신뢰’에 가치를 매겨 지불하는 것이다.     K&K 파인주얼리 고객은 보석 제품의 설명보다 해리 김 대표의 다이아몬드와 같은 강직한 투명성을 신뢰한다.     보석 원산지인 콜롬비아에서 생사를 겪으며 바닥부터 보석에 대해 쌓아온 그의 열정과 진심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보석에 대한 진정성은 열의는 최근 출간한 ‘보석상의 보석 이야기’에 그대로 담겼다.     그가 보석업계 첫발을 내디딘 1992년부터 지금까지 지난 30년의 인생 이야기가 책 한권에 알차게 담겼기 때문이다.     아내와 세 자녀가 김대표가 본지에 2년여 동안 썼던 컬럼 100여편 중 80여편을 선정해 60세 생일선물로 출간했다.     컬럼에 인생이야기를 쓰고 있었지만 모두 보석에 관한 이야기다. 김 대표의 인생은 보석 그 자체였다.     김대표는 1986년 유학으로 도미해 USC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에메랄드로 유명한 콜롬비아로 들어갔다. 보석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20대 후반 젊은 나이로 겁이 없었다. 치안이 불안한 콜롬비아에서 원석을 직접 보면서 에메랄드 기초부터 배웠다.     88올림픽이 끝나고 경제가 급성장한 90년대 초반 한국에서 보석은 부르는게 값이었다.     한국에서 보석으로 쉽게 돈을 버는 사람이 늘었다. 보석을 사려는 한국 바이어들이 콜롬비아로 몰려왔다.     김대표는 LG 홈쇼핑에서 보석을 판매하며 그 당시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에메랄드 원석 홍보를 위해 회사 측 요구로 에메랄드 광산에 들어가기도 했다.     안데스산맥 깊은 산속의 에메랄드 광산으로 가는 길은 목숨을 담보한 여정이었다. 에메랄드 원석을 사기 위해 현금을 들고 들어가 강도에게 돈과 목숨을 읽는 일도 다반사였다.     1997년 직접 회사를 차렸다. 곧 터진 IMF로 비즈니스가 완전히 중단됐다. 천정부지로 솟은 고환율로 물건 대금 갚기가 힘들었다.     김 대표는 역으로 한국 물건을 콜롬비아에 판매했다. 한국 재고처리 물건부터 최고 인기였던 키 높이 운동화 등을 판매했다.     2년 정도 의류 비즈니스를 했다. 콜롬비아 정부뿐만 아니라 게릴라까지 세금을 걷으면서 납치, 협박 등 생사 위기를 겪다가 결국 비즈니스를 접었다.     2002년 팜스프링스에 보석 소매업체를 열고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등 모든 보석을 판매했다.     납치를 당하고 협박을 견디며 콜롬비아에서 원석부터 보석 비즈니스를 시작한 김 대표에게 소매업 비즈니스는 유리했고 곧 고개층을 확보했다.     보석은 값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많지 않다. 다이아몬드는 그레이딩 시스템이 있지만, 유색 보석은 진위만 있을 뿐 그레이딩이 없다.     보석 가격은 정해진게 없다. 믿고 사는 방법밖에 없다. 파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2014년 팜스프링스 매장을 정리하고 코리아타운 플라자 매장으로 이전해 K&K 파인주얼리를 열었다.     김 대표의 투명한 비즈니스 방식으로 고객의 70~80%는 고정 고객이다. 일부 고객은 보석에 대한 정보를 텍스트로 보내기만 해도 고가의 보석 구입을 결정한다.      김 대표가 지난 30년 동안 보석을 통해 배운 것은 투명도가 보석의 가치 핵심 중 하나이듯 보석 비즈니스의 핵심 역시 투명도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보석 비즈니스에서 신뢰가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은영 기자신뢰 투명 보석 비즈니스 보석 이야기 보석 소매업체

2022-11-24

[보석 이야기] 7월의 탄생석: 보석의 황제 루비

루비는 정열적인 애정을 나타내는 사랑의 돌로 7월의 탄생석이다. '루비'라는 이름은 라틴어의 루브럼(Rubrum)에서 유래된 말로 빨갛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코런덤(Corundum), 즉 알루미늄 옥사이드 강옥석 중에 붉은색의 투명한 돌을 루비라 부르며, 그 외 것은 모두 사파이어라고 부른다. 핑크색인 것만 간혹 '핑크 루비'라 부르고 있으나 원칙적으로는 '핑크 사파이어'라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루비는 코런덤 중 가장 고가로 취급되는 매우 아름다운 보석이다. 루비와 사파이어는 코런덤 안에서 남매와 같은 돌로서 만약 품질이나 연마 상태, 무게가 같다고 한다면 단연 사파이어보다는 루비 가격이 눈에 띄게 높다. 대체로 가장 아름다운 루비의 색깔을 표현할 때는 흔히들 '피전 블러드(Pigeon blood)'라고 한다. 이는 문자 그대로 비둘기의 핏빛처럼 맑은 혈색 루비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루비는 대개 미얀마(버마)산이며 햇볕에 포함된 자외선을 받으면 빨갛게 석탄이 타오르는 듯한 형광색과 함께 순수한 비둘기 핏빛과 같은, 인간이 물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색을 나타낸다. 그 가격 또한 아름다움과 비례해 대단하다. 하나님의 보석 루비 고대 사람들은 루비의 불타는 듯한 강렬한 적색 때문에 '태양의 돌'이라고 믿어왔다. 또 이를 갖게 되면 건강.지혜.성공까지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성경에도 유대 민족을 대표하는 으뜸 보석으로 루비를 쳐준다. 구약 성서 욥기에서도 "지혜의 가치는 루비를 능가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루비가 물질 중에서도 가장 값진 것 중 하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보석' '보석 중의 보석' '신이 만든 열두 보석 중 가장 귀한 보석으로 아론 제사장의 목에 걸었다'는 등 루비를 찬미하는 말이 수 없이 많다. 또 루비는 구약 성서에서 12지파 중 '유다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이다. 다윗과 예수가 탄생된 지파가 바로 '유다 지파'다. 이 때문에 루비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국석으로 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루비 다이아몬드는 보석의 왕자, 에메랄드는 보석의 여왕이라는 말이 있지만 보석의 모든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켜 주는 루비는 보석의 황제라고 부른다. 루비는 가장 비싼 보석 가운데 하나로, 큰 루비에 상응하는 크기의 다이아몬드보다 더 희귀하다. 현재까지 가장 큰 루비 결정은 버마에서 발견됐으며 약 400캐럿이었는데 이는 발견 후 3개로 분리됐다. 대표적인 루비로는 영국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에드워드 루비(167캐럿),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스타 루비(138.7 캐럿), 뉴욕 자연사 박물관의 롱스타 루비(100캐럿) 등이 있다.

2017-06-29

[보석 이야기] 6월의 탄생석 진주…두 번째 이야기

6월은 진주의 계절이다. 세상에 수많은 보석들 가운데 유일하게 패류(조개류)가 만들어 낸 형태 그대로 보석으로 사용된다 장수.부귀.건강 등의 의미를 간직한 숨은 매력의 탄생보석이다. 진주는 화이트.블랙.실버.크림.핑크.퍼플.그레이 등 색이 매우 다양하며 그 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은 흑진주라고 한다. 또 진주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결혼 예물로 많이 사용되는 보석이다. 대부분의 보석이 광물에서 채취해 전문 기능공이나 연마사가 가공해 아름다운 빛을 나타내지만 진주는 생물체에서 자라 만들어진 유기물질 보석이다. 그러나 진주는 산이나 수분에 민감한 보석이라 사우나와 찜질방에서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한다. 착용한 후 안경을 닦을 때 사용하는 천 등으로 닦아 보관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천연진주 (Natural Pearl)와 양식진주(Cultured Pearl) 천연 진주는 인간의 도움 없이 생성 된 진주이며 양식 진주는 생성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으로 생성 된 진주다. 양식진주 1개를 얻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조개의 입을 억지로 벌려 인공적으로 모래 같은 핵을 넣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 여기서 조개 50%는 생성 과정에서 퇴사 하고 만다. 양식진주의 세계 최대 생산지는 일본이다. 일본이 이런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고끼치 미키모토'라는 사람 덕분이다. 진주 인공수정은 1900년대 초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1893년 양식진주 처음 개발한 미키모토는 일본 한 어촌의 우동 장수 아들로 태어났으며 오랜 시행 착오 끝에 진주양식에 성공했다. 그 후 양식진주는 세계 보석시장에 혁명을 일으켰다. 지금도 일본 최고의 문화 상품을 들라면 단연 미키모토의 진주를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꼽는다. 미키모토가 유명인사가 된 후 미국 대통령과 면담 하는데 윌슨 대통령이 "이 진주는 달의 눈물로 만들어 졌지요?"라고 묻자 미키모토는 "제 진주는 저희 눈물로 만들어 졌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미키모토가 진주양식에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헌신적인 희생과 도움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적조 현상 때문에 양식장의 진주가 모두 폐사 하는 눈물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그 당시 세상에서는 2가지 불가사의한 것이 있었는데 첫째는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진주를 만드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과학자 토마스 에디슨은 "미키모토가 진주를 만들어낸 것은 세계가 놀랄만한 일"이라며 "내가 할 수 없는 연구 2가지 중에 다이아몬드와 진주가 있었는데 그 중 한가지를 일본이 해냈다"고 말했다. 여성을 상징하는 진주 진주는 고통을 이겨낸 보석이라는 점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유일한 보석이다. 또 진주는 여성의 숨은 매력을 끌어내고 어느 옷에도 잘 어울린다. 특히 미국 등 서부에서는 학교를 졸업하거나 첫 직장을 얻으면 진주 목걸이나 귀걸이를 선물 한다. 웨딩드레스를 자세히 살펴보면 드레스 디자인에 많은 진주가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부 의 티아라와 머리에 쓰는 면사포를 보면 온통 진주로 장식돼 있다. 더불어 진주는 결혼식은 물론 장례식에 착용해도 결례가 되지 않는다.

2017-06-15

[보석 이야기] 6월의 탄생석: 진주 목걸이

고대 중국인들은 달빛과 조개의 사랑으로 진주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또 옛 로마인들은 진주를 '얼어붙은 신의 눈물(The Frozen Tears of God)'이라 표현했다. 진주가 고통을 이겨낸 보석이라는 이유 때문에 '진주=눈물'이라며 한 때는 바로 결혼 예물로 주지 않고 시부모가 일년을 갖고 있다가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러나 진주는 고통을 이겨 낸 보석이라고 하여 결혼 예물이나 예단으로도 많이 쓰이고 결혼 3주년, 10주년, 30주년 기념 보석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진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으나 가난한 시청 공무원의 아내 마틸드 로와젤. 항상 귀족들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살던 중 귀족인 장관 만찬 댄스 파티의 초대장을 받게 된다. 입고 갈 파티복은 간신히 구했지만 목에 걸고 갈 목걸이가 없었다. 그는 고민하다가 부자 친구 쟌느 부인에게 목걸이를 빌린다. 파티가 무사히 끝나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던 그는 빌린 목걸이를 잃어 버린 것을 알게 된다. 진주 목걸이가 들어있던 박스에 적혀 있던 보석상을 찾아간 마틸드는 보석상 주인에게서 그런 높은 질의 진주 목걸이는 무려 4만 프랑 정도 나간다는 말을 듣는다. 보석상이 제시한 가격을 간신히 3만5000프랑으로 깎고 일주일 말미를 받은 마틸드. 그는 친정 아버지가 물려준 1만8000프랑과 신랑과 함께 간신히 낸 사채 빚으로 목걸이를 구입해 쟌느에게 돌려 준다. 쟌느는 마틸드가 목걸이를 늦게 가지고 왔다며 보지도 않고 그냥 받는다. 구입한 목걸이가 잃어 버린 것보다 조금 모양이 틀려 걱정했던 마틸드는 오히려 쟌느가 박스를 열고 확인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 후 집도 잡히고 무려 10년 동안의 고생 끝에 사채 빚을 다 갚은 마틸드의 얼굴은 폭삭 늙어버렸다. 그는 남의 집 가정 일뿐만 아니라 하녀 생활도 했다. 마틸드의 남편도 안 먹고 안 쓰고, 퇴근 후 파트타임, 글쓰기 대행, 남의 집 청소, 수리 등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빚 청산 후 10년 만에 처음 상드리에를 걷다가 옛날 부자 친구 쟌느를 만난 마틸드. 폭삭 늙은 마틸드를 알아보지 못한 쟌느에게 자신이 10년 전 진주 목걸이를 잃어 버려 고생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쟌느는 그것이 가짜 진주 목걸이였다고 말했다. 사치는 허영을 낳고 그로 인해 마틸드는 10년 인생을 손해 본 것이다. 진주 목걸이는 눈물이었고 고생이었다. 가짜 목걸이를 위해 10년을 고생한 마틸드는 진짜 진주 목걸이를 되찾게 된다. 비록 고생은 했지만 10년 동안 욕심과 허영심, 시기심, 질투심을 버렸고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더욱 서로를 아끼고 남편의 하급 직책을 원망하던 버릇도 없어졌다.

2017-06-01

[보석 이야기] 동양의 탄생석: 5월의 비취

서양에 에메랄드가 있다면 동양엔 비취(옥)가 있다. 비취 역시 에메랄드처럼 녹색이면서 아름답다. 비취는 영어로 '제이드(Jade)'다. 그 어원은 라틴어에서 나왔으며 옛날에 신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믿어온 것에서 유래 됐다고 한다. 고서에는 "비취는 곧 아름다운 돌"이라고 쓰여있다. 비취는 역사적으로 오랜 옛날부터 내려온 동양의 보석이며 색채가 아름답고 성질이 섬유로 돼 특히 강인하다. 강인함을 이용해 옛날부터 중국 등지에서는 비취를 돌도끼.돌메.돌화상 등의 무기로 사용했다. 또 아름다운 녹색의 돌은 옛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여러 가지 장신구 및 의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더불어 옛사람들은 비취색으로 조정 직위의 상하를 결정 짓기도 했다. 에메랄드와 같이 녹색의 돌인 비취는 중국에서 발달했으며 값비싼 보석이다. 그러나 비취는 에메랄드처럼 투명한 결정이 아닌 반투명, 혹은 불투명한 녹색이다. 최근에 와서 비취 원석의 산출이 희소해 이전의 기물이나 장신구를 다시 현대 감각에 맞도록 개조, 즉 재가공해서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모든 보석은 전반에 걸쳐 말할 수 있지만 비취는 그 채도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크다. 광택과 형태, 흠의 유무도 이와 관계가 있다. 알래스카 산의 비취는 색이 탁하고 광택의 아름다움이 중국산과는 비교할 수 없다. 비취는 역시 중국이나 버마산의 것을 최고품으로 여기고 있지만 어느 것이나 '카보션형'으로 연마해 반지 등으로 사용한다. 이 보석은 옛날부터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석이며, 동양여성들이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흥미를 보이는 보석이다. 서양인들에게는 비교적 관심이 적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점차 호감이 증가해 비취에 대한 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비취에는 '네프라이트(Nephrite.연옥)'과 '제이드(Jade.경옥)' 2가지가 포함돼 있다. 네프라이트와 제이드는 그 외관과 색채, 광택, 성질 등이 아주 비슷해 혼동하기 쉬우나 광물학 상으로 볼 때는 아주 판이하다. 한국에서는 장신용의 녹색 옥을 비취라고 한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비취를 캐내기 시작한 것은 오래 되지 않는다. 현재 시장에 널리 나와 있는 이 보석은 네프라이트에 속하는 것으로 활성 광맥 중에서 산출 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비취를 '하늘의 돌'이라고 여겼는데 이 보석을 지니고 있으면 인체에 기를 불러 일으키고 어혈을 풀어 주며 혈액 순환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 중풍.고혈압.신장병.관절염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믿어, 중국 황제나 황후들은 비취를 최고의 보물로 여겼다. 더불어 이 보석을 지니면 젊음을 유지해주고 행복과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비취를 비비면 좋은 결과를 얻으며 비취로 만든 물건은 액운을 물리 친다고 한다. 비취는 동양적이며 잔잔하고 심오한 녹색의 돌로서 자연을 누리는 동양인들의 풍취를 나타내 왔다.

2017-05-18

[보석 이야기] 5월의 탄생석, 에메랄드(Emerald)

에메랄드(Emerald)는 초록색의 보석으로 푸르름을 자랑하는 봄철에 대자연의 미, 그리고 미래의 약속으로 여겨져 왔다. 성실.선의.친절을 뜻하는 5월의 탄생 보석. 녹주석 중 가장 고가인 동양의 비취와 더불어 녹색의 대표적인 보석으로 행복을 상징하는 미국이나 영국의 5월의 탄생 보석이기도 하다. 탄생석(Birth stone)은 사람이 태어난 달과 연관 지어 몸에 지니면 행운이 따른다고 여겨지는 보석을 뜻한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탄생한 달에 속하는 보석을 지니고 있으면 불행과 병을 물리치고 행운과 장수를 한다고 믿었다. 사실 탄생석으로 지정된 각 보석의 원석들은 신기하게도 인체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강한 기를 지니고 있다. 아마도 고대인들은 보석의 신비한 능력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탄생석에 더욱 더 큰 의미를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탄생석은 구약 성경 출애굽기 28장에 적혀 있는 12가지의 보석과 신약 성경의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와 있는 12가지 보석을 기준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세계적인 에메랄드 산지: 콜롬비아 안데스 산맥 에메랄드는 베릴(Beryl)이라는 광물 중 가장 대표적인 보석으로, '비취색'을 띠는 녹주석의 일종이며 금이 많이 가있다. 크료뮴을 함유해 취록색을 강하게 나타내기도 하며 '베릴군'이라는 원석에서 나온 청람색을 띠는 아쿠아마린과 형제보석이다. 남아메리카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세계적인 주요 산지로 꼽힌다. 그 중 콜롬비아에서도 무조(MUZO) 광산이 가장 유명한데, 이 광산에서 산출되는 에메랄드가 가장 색이 짙고 양질의 스톤이 많다. 발견되는 에메랄드 중 약 3분의 1을 보석으로 커팅할 수 있는 품질이다. 에메랄드의 내포물은 원석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산출되는 99% 이상에 내포물이 존재하며 에메랄드 속에는 액체와 기체, 고체, 힐링크랙(Healing crack) 등이 있어 뿌옇게 보일 수 있다. 이는 결함으로 보지 않고 합성이나 모조품과 구별할 수 있는 증거로 활용된다. 그래서 콜롬비아 속담에는 "결점 없는 사람은 있어도 흠이 없는 에메랄드는 없다"는 말이 있다. 브라질을 비롯한 세계 주요 광산에서 산출되는 에메랄드는 콜롬비아에서 산출되는 원석과 비교했을 때 품질이나 색상에서 가치가 다소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평균적.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모두 색깔이 엷거나 품질이 결정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에메랄드는 루비.사파이어와 함께 투명하기로 유명한 3대 보석이다. 귀보석류에서는 위의 3가지가 가장 고가이며 전통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희귀종의 일부도 귀하고 고가에 판매되는 보석이 있기는 하나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초록색의 여왕으로 꼽히는 에메랄드는 수 많은 보석 중 최초로 장식용으로 쓰였으며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즐기던 보석이기도 했다. 에메랄드는 고가의 보석으로 예전에는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사랑이 변치 않으며 다가오는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하여 애용됐다. 또 누구나 성실.정직해지며 낭비를 멈춰 점차적으로 부를 누리게 된다고 믿었다. 흔히 '신록이 우거진 나무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눈의 피로감이 가시는 것 같다'라고 말하듯 에메랄드의 선명한 녹색은 흡사 신록과도 같이 사람의 피로한 눈을 식혀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2017-05-04

[보석 이야기] 4월의 탄생석, 다이아몬드-물방울 다이아몬드

우리는 아름답게 피어난 꽃을 보고 기쁨과 활력을 찾지만 그 꽃은 언젠가는 시들어 버린다. 그에 비해 보석은 자연이 인류에게 선사한 시들지 않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보석을 통해 꽃이 주는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느낄 수 있으며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삶의 가치와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줄 수 있다. 갓 결혼한 신부나 미망인은 결혼 반지를 보면서 자신들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거나 신비로움, 추억, 사랑 등을 기억한다. 햇살처럼 유난히 빛나는 눈부심을 결정체로 해 형상화된, 꺾이지 않는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다이아몬드는 아름다움과 강함이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하나로 함축해놨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하나로 맺어질 때 서약을 하는 자리에서 주고받는 다이아몬드 반지는 더욱 빛을 발하고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 있는 그 어느 보석보다 가장 강하며 광채 또한 제일 찬란하기 때문에 보석의 왕자라고도 불린다. 테일러 버튼의 물방울 다이아몬드 수많은 보석과 많은 종류의 다이아몬드 중 왜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유명해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둥근 모양의 다이아몬드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대중화 되지 않은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희소성으로 인해 일부 유명인들만 애용해오다 최근에 유명해졌다. 사실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원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일 것이다. 리차드 버튼이 테일러에게 프로포즈로 선물한 것이 물방울 다이아몬드였다. 69캐럿 배 모양의 이 다이아몬드는 리차드가 카르티에 보석상에서 몰래 구입, 테일러에게 선물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고, 크기가 커서 반지 대신 테일러의 생일 때 목걸이 펜던트로 다시 만들어 그 아름다움이 화제가 됐다. 이름도 '테일러 버튼 다이아몬드'로 명명됐다. 그 후 테일러는 아름다운 물방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아프리카 어린이 에이즈 퇴치 병원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해 경매에 올렸다. 이는 입장료만 2500달러를 지불해야 관람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경매였다. 다이아몬드는 약 300만 달러에 팔렸는데 버튼이 구입할 때는 100만 달러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 보석은 마지막으로 사우디 귀족의 손에 넘어가 현재 시세로는 약 2500만 달러라고 한다. 무려 25배나 올라간 가격에 세계가 감탄하고 있다. 이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대명사로 영국에서 귀족의 명예를 얻었고,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사랑의 다이아몬드로 더욱 유명해졌다. 더불어 지금은 세상을 달리한 세계적인 가수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우정과 사랑의 선물로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선물해 미국 전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제 한국에서도 부의 상징이며 귀족 다이아몬드로 인기가 높아져 다른 종류의 다이아몬드보다 더 가치 있고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한 관계자가 감사위원인 모씨에게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청탁의 선물로 줬다 해서 화제가 됐다. 이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모양이 특이하며 독특한 빛을 아름답게 발하고 있어 유명인이나 다이아몬드 매니아 및 투자가에게 인기가 높다.

2017-04-20

[보석 이야기] 4월의 탄생석,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종류와 특징, 그리고 역사 순수, 청정, 영원한 사랑의 약속…. 4월의 탄생 보석으로도 유명한 다이아몬드 이름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아다마스', 즉 '정복할 수 없다'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다이아몬드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인도의 드라비다족으로, 기원전 7~8세기의 일이다. 다이아몬드는 과거에 왕과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현재는 가장 인기 있는 보석으로 결혼 예물의 대명사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17세기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페르지에 의해 브릴리언트(brilliant) 컷의 연마 방법이 발명된 후의 일이다. 18세기초 브라질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기까지 인도가 유일한 다이아몬드 생산국이었다. 따라서 유럽에 수입되는 다이아몬드는 극소량이었고, 그 때문에 다이아몬드는 왕족이나 귀족만이 소유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제했다. 다이아몬드는 1860년경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고 채굴되면서 널리보급 되고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는 순순한 탄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4개의 다른 탄소 원자가 정사면체의 형태를 이뤄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결혼 예물의 역사 예물의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의 막시 밀리안 대공이 프랑스 공주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청혼할 때 선물하면서다. 다이아몬드는 예전부터 승리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이아몬드는 연마.색상.투명도.무게 4가지를 기준으로 가치가 결정된다. 어떤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느냐에 따라 색상이 표현되는데, 질소가 가장 흔한 불순물이며 노란색을 띤다. 청색을 띠게 되면 붕소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파랑.노랑.검정.무색 등의 다양한 색으로 산출되는데 화이트는 무색에 가까울수록 더 가치가 있고 빛을 잘 투과하게 된다. 투명도는 11등급으로 구분이 되고 10배의 확대경으로 다이아몬드를 봤을 때 나타나는 상태를 기준으로 한다. 아무런 결점이 없는 완벽한 상태를 플러리스(Flawless), 내부엔 결점이 없고 외부에 결점이 미세하게 존재하면 인터널리 플러리스(Internally Flawless) 등급이다. 작은 내포물을 포함하면 SI 등급, 매우 작은 내포물은 VS 등급이고 그보다 더 작은 내포물은 VVS,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내포물이 포함되면 I 등급으로 구분하게 된다. 색상이나 투명도는 자연적인 요소지만 연마(cut)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서 브릴리언트 컷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브릴리언트 컷은 보석의 모양을 총 58면으로 가장 빛나게 깎고 낭비가 적은 가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브릴리언트 컷의 연마 방법으로 만든 보석은 백색광이 들어가면 굴절이 달리 일어나 다이아몬드 표면에 빛이 분산될 때 무지개 색이 나온다. 보석의 왕 다이아몬드는 탄소의 결정물이지만,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천연 광물질들 중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은 화산 분화구에서 생성되고, 화산 폭발에 의해 주의로 흩어져 산의 바위나 돌 틈에 있으며 아주 드물게 강가에서 채취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다이아몬드는 중앙 아프리카와 러시아에 가장 많이 분포돼 있다. 보통 1캐럿 다이아몬드 한 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250톤의 자갈과 바위를 캐내야 할 만큼 어렵고 힘든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높다.

2017-04-06

[보석 이야기] 월의 탄생석, 블루 사파이어

요즘 탄생석 중에서도 9월의 탄생석인 블루 사파이어가 최고의 이슈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가 평민 출신 여자 친구 케이트 미들턴에게 어머니 다이애나비가 사용하고 남편 찰스 황태자에게서 받았던 9캐럿 블루 사파이어 반지를 프로포즈용으로 준 것이 전 세계적으로 펴져 젊은 남녀들이 놀라 경악하고 화제가 됐다. 사실 요즘은 거의가 다이아몬드 반지로 남들보다 유니크하고 멋있게 세팅해 사랑하는 여인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 유행인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다이애나비의 블루 사파이어 반지를 선물한 것이다. 이는 영국 왕실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그 덕에 요즘 보석상들은 특수 주문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블루 사파이어 반지가 프로포즈용으로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식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은 여성이라도 결혼기념일 때에는 꼭 블루 사파이어 반지나 목걸이를 바라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원래는 결혼 45주년 기념으로 사파이어 은혼식을 하는데 요즘은 일찌감치 받기를 원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사파이어는 가을의 보석으로 청명한 가을, 하늘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9월의 탄생석으로 루비(빨간색)와 형제인 커럼덤 계열의 보석이다. 그 외에도 핑크, 오렌지, 그린, 바이올렛 등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다. 블루 사파이어는 덕망과 자애, 그리고 성실과 진실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로마 교황청 추기경들의 반지로 유명하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제사장 에봇 흉패 두 번째 보석으로 신성함을 나타내고 있고 12세기부터 레네스 주교에 의해 시작된 전통으로 성직자의 중지에 끼워져 교회의 상징으로도 쓰여지고 있다. 18세기 독일에서는 블루 사파이어와 루비가 약품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여성들에게 잡티, 기미, 주근깨 등이 생겼을때 사파이어를 가루로 만들어 꿀에 섞고 팩을 함으로써 얼굴을 치료하기도 했다. 사파이어는 몸에 지니면 마음이 밝아져 부정한 마음이나 사심, 사리욕이 모두 없어진다고 한다. 많은 보석들은 광물질로 많은 기가 뭉쳐져 있다. 보석은 학술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땅속 깊은 곳에서 꺼내져 태양의 빛에 의해 인간이 합성해낼 수 없는 색채가 있다. 광물에게는 생명의 빛이 많다. 보석은 사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원천적 궁합의 기를 갖고 있다고 한다.

2016-09-22

[보석상의 보석이야기]세계 8대 불가사의에 꼽히는 호박의 방

한국군에 비친 카투사는 편한 곳에서 군기 없이 설렁 설렁 근무하는 한량 같은 존재로 생각되지만 미군의 기준에선 카투사는 너무도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하는 불쌍한 존재였다. 똑같은 근무조건임에도 월급부터 확연히 차이가 있어 일반 미군 사병과 카투사의 월급은 50배에서 100배에 이를만큼 차이가 컸고 휴가나 그 밖의 혜택에서도 월등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내에 있는 대부분의 유료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고 카투사 처우 개선의 일환으로 미군에겐 없는 한 달에 한 번 3일의 포상 휴가를 가곤 했다. 가끔 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어 한국 실정을 모르는 신병들은 우리가 받는 이런 혜택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지만 속사정을 알고 나면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한 나라 두 개의 문화권에서 생활하다 보니 한국군의 잣대론 카투사는 엉터리 군인이지만 미군의 눈에는 똑같이 일하고도 항상 배고픈 용병인 것이다. 평일에는 일과의 종료를 알리는 오후 4시 반 점호가 끝나면 우리는 통금시간인 밤 12시 전까지 영내 외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미군들은 일이 끝나면 영외에 있는 바나 클럽에 가서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지만 가진 것 없는 카투사는 삼삼오오 모여서 운동을 하거나 영화관을 몰려다녔다. 그러다 월급 3-4천 원이라도 받는 날이면 우리는 의정부로 나가 회식도 하고 당구도 치면서 몇 시간 만에 한 달치 월급을 몽당 탕진하고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지급되는 양말, 내복, 치약, 비누 등의 보급품을 아껴 쓰며 양키시장에 내 다 팔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면 부업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작대기 두 개, 일병이 되고 나서야 내가 꿈꿔 왔던 중대 행정병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행정병이 되기 위해 창피를 무릅쓰고 여고생들에 둘러 싸여 타자기를 두들기며 꿈을 키워 왔는데 우여곡절 끝에 꿈은 현실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과를 마치고 중대 본부를 나서려 하는데 평소에 나에게 다정이 인사를 건넸던 흑인 상병이 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 쭈뼛쭈뼛 내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뜬구름 잡는 얘기로 말을 시작하더니 이윽고 나에게 한가지 부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애편지를 대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태어나서 영어만 쓰고 살아온 미국인이 평생 한국말만 하고 산 나에게 영어로 연애편지를 부탁하니 나는 한동안 어이가 없어 멍하니 그를 쳐다만 보았다. 할 말을 잃어 멍 때리는 내 모습을 보고 그는 내가 편지에 대한 대가를 기다리는 줄 알고 편지를 써 주면 맥주 한 박스와 말보로 담배 한 보루를 선물로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나는 선물에 눈이 어두워 앞뒤 생각 않고 오케이를 해 버렸다. 그는 한국에 오기전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 연락이 뜸해지자 관계가 소원해졌고 이윽고 결별을 통보하는 편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내가 중대 행정병이라 자기보다 당연히 영어를 잘 쓸 거라 생각하고 부탁을 했지만 나는 타자를 잘 치는 거지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군대는 문서 양식이 정해져 있어 이미 만들어진 틀안에 정보만 입력해 뽑아내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별로 필요치 않았다. 오케이를 하고 방에 들어오니 마음은 더없이 착잡해 왔다. 한국말로도 한번 써 본 적이 없는 연애편지를, 그것도 영어로 뭘 어떻게 써 줘야 하는 건지 머리에선 이미 쥐가 나기 시작했다. 밤새 뒤척이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다음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캠프 안에 있는 도서관을 찾았고, 사서에게 연애편지 쓰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자 그는 주저 없이 몇 권의 책을 책장에서 뽑아다 주었고 나는 그것들을 본 순간 오줌 쌀 것 같은 전율을 온몸으로 느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편지쓰는법’, ’로맨틱한 편지쓰기’, '연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백가지 문장’ 등 내가 찾던 바로 그것들이 내 앞에 있었다. 학교 다니며 연마한 짜깁기 실력으로 나는 한편의 위대한 서사시를 완성했고 그것을 그에게 갖다 주었다. 내가 써 준 편지가 애인에게 통했던지 그 후로도 나는 그의 편지를 대필해 주었고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의뢰인을 얻을 수 있었다. 맥주 한 박스와 담배 한 보루는 공식 가격이 되었고 나는 제대할 때까지 줄곧 이 일을 부업 삼아 맥주와 담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보석상식 51: THE AMBER ROOM(호박의 방) 영어로는 AMBER, 한국어로는 호박으로 불리는 엠버는 나무의 송진이 오랜 세월을 거쳐 화석화되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진주와 더불어 광물로 구성되어 있지 않는 유일한 보석입니다. 약 5천만 년전의 지질시대에서 형성 된 호박은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보석 중의 하나입니다. 호박의 대표적인 산지는 발틱해 주변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노리게, 비녀, 마고자 단추 등 귀족과 부자들의 장식구를 만드는데 사용됐습니다. 호박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으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 위치한 호박의 방(THE AMBER ROOM)이며 세계 8대 불가사의에 꼽히는 것이었습니다. 호박의 방은 원래 러시아가 아닌 독일에 있었지만 호박의 방에 눈독을 들인 러시아 황제 표도르 1세에 의해 러시아 근위대와 호박의 방을 맞 교환하는 호박의 방 외교를 펼친 끝에 러시아의 겨울궁전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후 세계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명령으로 독일 나치에 의해 약탈 당했으며 그 후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부단한 노력에도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되자 1979년부터 호박의 방을 복원하기 시작했지만 자금난으로 일시 중단해야만 하는 고비를 겪게 됩니다. 그 후로 독일 기업의 도움을 받아 50명의 전문가들에 의해 마침내 20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창건 300주년 일에 마쳐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이 호박방은 50만 개의 크고 작은 호박을 잘라 퍼즐 조각을 맞추듯 만들어졌으며 최근 들어 중국인의 호박 사랑으로 호박 가격은 급상승했으며, 더불어 이 호박방의 가치 또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 되었습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6-08

[보석상의 보석이야기]브래드 피트가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선물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진주는?

거기만 아니면 어디를 가던 상관있으랴 하던 바로 그곳, 미 제2보병 사단으로 배치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눈앞이 깜깜했다. 2사단은 전투사단이라 훈련도 많고, 주말이면 자유롭게 생활하는 후방부대들과는 달리 외출도 제한되어 있어 우리들 사이에서는 2사단에 갈 바에는 한국군에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라는 얘기를 하던 터라, 2사단 배치 소식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부산, 대구, 평택, 서울도 있건만 왜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곳들 중에 최전방에 있는 2사단이란 말인가. 나는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 군대에서 좋은 보직을 받기 위해 종로에 있는 타자 학원을 다녔다. 타자를 잘 치면 행정병으로 편한 군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여자들에 들러 싸여 하루 종일 타자기를 두들겨야 했고 덕분에 나는 영문 1급, 한글 2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병사단인 2 사단은 대부분이 전투병으로 이루어져 있어 내가 원하는 행정병 보직은 사실상 물 건너 갔고 소총 들고 산과 들로 박박 기어 다닐 생각을 하니 자대로 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12월의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무거운데 차장밖에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하염없이 눈이 쏟아져 내렸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가 2사단 본부가 위치한 동두천이 아닌 의정부에 있는 포 사령부로 나는 최종 배치가 되었다. 내가 배치된 포병중대는 미군 120명과 카투사 1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카투사는 한국군이지만 미군에 소속되어 미군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일과 생활을 미군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많은 월급, 휴가 그리고 각종 혜택을 받는 미군과는 달리 우리는 군 생활 동안 보름의 휴가와 한국군에서 주는 몇천 원의 월급이 전부였다. 그리고 인사권이 한국군에 있어 우리를 처벌하고 재배치하는 권한은 한국군에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우리는 각종 혜택을 다 재배치하는 있는 정규직이 아니라 일종의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비정규직인 것이다. 신병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일을 마친 카투사 고참들은 속속 카투사 선임방에 집결했고 나를 환영하는 환영식과 더불어 신고식이 진행되었다. 주는 술잔마다 마다 않고 받아 마시다 보니 어느덧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기가 올랐고 이어서 고참들의 질문과 기합이 쏟아졌다. 질문에 솔직히 답하면 오늘 신고식을 쉽게 끝내겠다는 최고 선임의 꼬임에 나는 취기를 빌려 솔직히 답했고 그 솔직함은 더 큰 화근이 되어 군 생활 내내 나를 괴롭히는 빌미가 되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고 온몸은 어젯밤 기합과 구타로 성한 곳 없이 아팠다. 나는 취기가 가시지 않은 머리로 어젯밤 일을 되돌려 보았다. 중대 카투사들을 한 명 한 명씩 자세히 보고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라는 최고 선임의 명령에 나는 느낀 그대로 대답한 죄 밖에 없는데…. 변태처럼 생겨서 변태 같다고 했고, 느끼하게 생겨서 느끼하다 했고, 기생오라비 같아서 기생오라비라고 했고, 사기꾼 같아서 사기꾼 같다고 했는데…. 그 후로 그것은 그들의 별명이 되었고 그들의 별명이 불릴 때마다 나는 고참들에게 내 뒤통수를 내 주어야 했다. “야 변태” 하면 나는 변태한테 맞아야 했고, “야 기생 오라비” 하면 나는 기생오라비한테 맞아야 했다. (다음에 계속) 보석상식 50: 브래드 피트가 전 부인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선물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진주, 자연이 준 선물, 컹크 펄(CONCH PEARL)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고 다니는 대부분의 진주는 양식을 통해 대량 재배된 양식 진주입니다. 조개 속에 인위적으로 핵을 심어 5년에서 7년을 기다리면 우리가 하고 다니는 진주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컹크 펄은 인위적인 양식이 불가능해 자연 상태에서 컹크라는 불리는 대형 소라가 스스로 핵을 생성해 만들어 낸 칼슘 덩어리인 것입니다. 컹크 펄이 지닌 색상 또한 다양해 하얀, 노란, 핑크, 빨간등 다채로운 색을 갖고 세상에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구름이 낀듯한 핑크색은 단연 으뜸으로 쳐 주며 값 또한 다이아몬드 그 이상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원형인 양식 진주와는 달리 타원형(OVAL SHAPE)으로 생성되며, 진주의 지름으로 사이즈를 구별하는 양식진주와 달리 컹크 펄은 보석의 캐럿 웨잇(CARAT WEIGHT)으로 크기와 값이 정해집니다. 즉 양식 진주는 몇 미리 짜리가 얼마라고 하지만, 컹크 펄은 다이아몬드처럼 캐럿에 얼마로 통용됩니다. 수많은 진주 양식업자들이 양식을 통해 대량생산을 꿈꿔 왔지만 아직 한 번도 양식에 성공한 적이 없는 컹크 펄은 그래서 그 희귀성과 아름다움에 있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진주인 것입니다. 일부 한국 분들은 컹크 펄을 콘치 펄이라고도 발음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발음입니다. 컹크 펄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6-01

[보석상의 보석이야기]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 영국 왕 에드워드 8세

“엄마, 나 군대가….” 엄마는 뭔가에 얻어맞으신 듯 한동안 멍하니 나를 쳐다보시더니 말을 이으셨다. “너 입영 통지서도 안 나왔는데….” “나 지원했어 카투사에….” 합격 통지서를 받고 당황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대 없이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그냥 지원해봤는데 카투사 시험에 덜컥 붙어 버렸다. 나는 합격 통지서를 받은지 3개월 만에 논산 훈련소에 입소해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과 2주간의 유격훈련을 마치고, 마지막 4주간의 미군 교육을 받기 위해 평택에 있는 미군부대, 캠프 험프리로 이동해야 했다. 속칭 ‘양키’에게 빌붙어서 편하게 군대 생활할 너희 놈들은 고생 좀 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6주의 군사훈련은 그 어떤 연대의 훈련보다 더 힘들고 고달팠다. 83년 9월 말에 입대한 논산 훈련소는 훈련이 끝나고 나니,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싸늘한 11월이 되었고 이마에는 이병 작대기 하나가 붙어 있었다. 논산역 플랫폼에는 갓 배출된 신병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머리 부분인 기관차 앞쪽 열차 칸은 최전방에 배치될 신병들을 위한 것이었고 뒤로 갈수록 후방에 배치되는 병력이 탔다. 그리고 각 열차마다 헌병이 앞뒤 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전방으로 가는 병력이 탄 열차에는 혹시 모를 탈영에 대비해 헌병들의 경계가 유독 삼엄했다. 초주검이 되어 있는 전방 배치 병력에 비해 맨 뒤쪽에 배치된 카투사 병력이 탄 열차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표어가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다가올 군대 생활에 대한 걱정보다는 미군부대 생활에 대한 기대로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실은 열차는 평택역에 도착했고 우리는 전방으로 이동하는 병력들과 이별해야 했다. 차창 맞은편에 우리를 응시하는 눈동자들은 초조와 부러움으로 뒤섞여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향해 “잘 가라 전우여… 조국 영토 방위를 위해 너희 한 몸 다 바쳐라.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돈단다.” 라고 마음으로 소리쳤다. 우리를 인계받기 위해 온 미군과 카투사 조교는 나름 군기를 잡기 위해 목청도 높이고 얼차려도 주었지만 그전에 우리가 만났던 훈련소의 유격 조교에 비하면 그들은 사관과 신사에 나오는 젠틀맨이었다. 내무반에서 짐 정리를 마치고 우리는 식사를 위해 매스 홀(미군 식당)로 이동했다. 귀동냥해서 듣던 미군 식당을 눈으로 미군 식당을 그 규모는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넓은 홀안에 잘 차려진 테이블 위에는 육해공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다양한 종류의 주스와 소다, 각종 육류와 해산물 그리고 태어나 생전 처음 보는 열대 과일 등 최상급 호텔에나 가야 맛볼 수 있는 진수성찬이었다. 지금은 한국도 모든 게 흔하고 풍요롭지만 내가 군대 생활을 하던 80년대 초만 해도 이런 음식들은 보통 사람들이 먹기 힘든 것이었다. 논산 훈련소에선 항상 충분치 못한 배식 탓에 옆 전우에게 돼지비계 한점이라도 더 가면 하루 종일 고기 한점 생각에 밤까지 잠 못 들었다. 그리곤 내일 배식 때는 내게 더 많은 밥과 고기 한점이라도 더 들어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시절이었다. 항상 배고팠던 논산 훈련소 생활이었기에 미군 식당은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나는 제대하는 그날까지 이런 산해진미에 빠져 살 생각을 하니 입가엔 미소가 절로 생겨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양식과 작별 아닌 작별을 해야 했다. 평택 교육대에 입대한지 2주째, 아침을 먹자마자 나는 쏜살같이 식당을 박차고 나와 위 속에 집어넣었던 모든 음식을 토해 내고 말았다. 신토불이라고 했던가…, 역시 우리 몸에는 우리 음식이 최고인가 보다. 평생을 된장과 김치에 익숙한 내 몸이 느끼한 버터에 한계를 느끼고 모든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라면이 그렇게 좋고 귀한 음식이라는 것을. 그 후로 나는 남은 미군 생활을 라면과 봉지 김치로 연명했고 가끔 가사 장학금이 집에서 도착하면 카투사 스낵바에서 김치찌게나 된장찌게로 내 불쌍한 위를 달래야만 했다. (다음에 계속) 보석상식 49: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 영국 왕 에드워드 8세 갑작스러운 아버지 조지 5세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과 미국인인 그녀의 신분 때문에 왕실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결국 왕위를 버리고 사랑을 택하게 되는 세기의 러브 스토리 주인공이 됩니다. 왕위에서 물러난 후 에드워드 8세는 윈저공으로 칭해집니다. 윈저 공이 된 에드워드는 미안한 마음에 심슨 부인에게 평생을 통해 수많은 보석을 선물하게 되고 그는 입버릇처럼 심슨 부인에게 선물한 모든 보석을 심슨 부인 사후 분해해 그녀 외엔 아무도 그 보석들을 가질 수 없게 해 달라고 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애틋함을 보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사후 1987년 심슨 부인이 소유한 214점의 보석들이 경매에 나오게 됩니다. 그중 THREE OSTRICH PLUME DIAMOND BROOCH는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기 전 왕자의 신분일 때 미래의 부인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것을 두고 경매에서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심슨 부인과 각별한 우정을 나눈 할리우드 여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맞붙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녀와의 우정과 추억이 담긴 이 물건을 찰스 황태자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예상가를 초월하는 고가를 쓰게 되며 낙찰받게 됩니다. 살아생전 둘도 없이 가깝고 친하게 지냈던 심슨 부인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보석에 있어서 만큼은 서로에게 지기 싫어해 상대보다 더 좋은 보석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했다고 합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5-18

[보석상의 보석이야기]밤·낮으로 변하는 메두사의 두 얼굴을 한 보석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고된 훈련과 몽둥이세례로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몸은 더 이상 가눌 수 없게 떡이 되어 버려 나는 신발도 벗지 못하고 그 자리에 뻗어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머니는 나를 깨워 일으켜 세우시더니 2층에 있는 내방에 들어가 자라고 하셨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고 어머니는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시고 얼마나 우셨는지 눈은 퉁퉁 부어 계셨다. 지난 밤 몸도 못 가누고 쓰러져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자는 내 모습을 보시고, 옷이라도 벗겨 편히 재우려고 바지를 벗기다가 궁둥이와 허벅지에 난 시퍼런 멍 자국들과 피 묻은 팬티를 보시고 그만 기절할 만큼 놀래 버리신 거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늦게 귀가하는 줄로만 아셨던 어머니는 이 일로 내가 매일 몽둥이찜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얻어 맞고 다니는 내 모습에 분노하셔서 그길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셨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은 보이스카우트 대장 선생님께 이사실을 알렸고 그날로 보이스카우트 단실엔 커다란 대못이 박혔다. 그리고 나로 인해 한동안 아무도 단실에 올라갈 수 없었다. 나는 이 일로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창피하고 미안해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고,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어 내 스스로 얼굴에 주홍글씨를 쓰고 다녔다. 매일 고된 훈련과 몽둥이찜질에 몸과 마음은 지쳐갔지만 다음날이면 뭔가에 홀린 듯이 다시 찾던 단실, 허구한 날 우리를 두들겨 패던 하나님과 동창인 선배들, 그 선배들이 자기 용돈을 쪼개 사 주던 라면 한 그릇, 어느 날 졸업한 선배라도 찾아오면 먹을 수 있었던 곱빼기 짜장면,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이 모든 과정을 참고 견디어 왔건만 나 자신이 창피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학교에다 이 사실을 알린 어머니가 한없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먼저 손 내밀어 위로해 준 동기와 선배들이 있어 나는 외롭지 않았고 그래서 내 얼굴에 써 놓은 주홍 글씨도 지울 수 있었다. 어느 날 학교를 졸업한 선배가 단실을 찾아와 우리에게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지금 여러분이 이 훈련 과정을 무사히 마친다면 후에 해병대를 가도 쉽게 군대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해병대를 안 갔다 와서 알 수는 없지만 내가 겪은 6주간의 논산 훈련소 생활은 식은 죽 먹기가 맞았다. 그리고 나의 이런 학창시절 경험은 후에 내가 세상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고, 수많은 어려움과 죽을 고비를 겪은 남미 콜롬비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35년이 지났다. 우리는 매일 카톡방에서 대화를 나눈다. 칠십이 훌쩍 넘은 선배들부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배들까지 시대는 달랐어도 같은 학교 같은 단실에서 하나의 정신으로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다. 1922년 독립운동가 관산 조철호 선생님이 대한민국 최초로 서울 중앙 중 고등학교에 세우신 대한 소년단(한국 보이스카우트), 나는 이곳의 일원이라는 것이 한없이 자랑스럽다. 보석상식 48: 밤 낮으로 변하는 메두사의 두 얼굴, 알렉산드라이트(ALEXANDRITE) 낮에는 에메랄드로 밤에는 루비로 변하는 알렉산드라이트는 그 희귀성에서 다이아몬드를 압도하며, 최상급의 알렉산드라이트는 값 또한 메길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보석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1830년 러시아의 우랄 산맥에서 처음 발견되어 당시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의 이름을 따 알렉산드라이트로 명명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이 보석의 존재가 두각을 나타나게 된 데는 밤 낮으로 바뀌는 색의 변화뿐만 아니라 러시아 황실 군대를 상징하는 녹색과 빨간색을 띄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러시아에서 거의 채굴이 되지 않으며 대부분이 스리랑카, 동아프리카, 브라질 등에서 생산됩니다. 하지만 최상급의 알렉산드라이트는 단연 러시아산을 꼽습니다. 실질적으로 밤 낮으로 바뀌는 색의 변화는 빛이 광물에 투과될 때의 조도에 영향을 받는 것이며 또한 빛이 쏘여지는 각도에 따라 밤 낮에 상관없이 색의 변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라이트는 진주와 문스톤과 더불어 6월의 탄생석으로 결혼 55주년 때 선물하는 보석으로 유명합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5-11

[보석상의 보석 이야기]학대가 학습이 되면, 사랑으로 믿게 된다

외아들인 나는 어릴 적부터 외아들이라는 단어를 무척 싫어했다. 항상 여자들에 둘러 싸여 살던 나는 왠지 외아들이라고 하면 마마보이 또는 계집애 같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상상되곤 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나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친구들이 가끔 나를 보곤 “애, 참 이쁘게 생겼다.” 라고 하면 나는 속으로 이 아줌마 참 무식하시네, 사내아이 보고 이쁘다니 잘 생겼다라고 해야지라면서 그 아줌마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어떤 아줌마가 나를 보곤 잘 생겼다고 하면 나는 그 아줌마가 김지미보다 더 이뻐 보였다. 단어 하나에도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외아들의 이미지를 벗고 남자로 거듭나기 위해 클럽에 가입하기로 마음먹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남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유도부, 검도부, 역도부도 생각해 봤지만 누군가와 몸으로 겨룬다는 것이 영 자신이 없어 나는 클럽 이름도 세련된 영어고 캠핑 같은 야외 생활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 스카우트를 찾아가게 되었다. 처음 본 2학년 선배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클럽에 대해 자상히도 설명해 주었기에 그런 선배가 무척 호감 가고 지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건 환상일 뿐이라는걸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럽에 가입하고 나니 선배들의 자상함은 조폭 이상으로 잔인하게 변했고 지적인 건 '개가 다 물어갔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모든 게 일 학년 단원을 모집하기 위한 사기였다는 것을 클럽에 가입하고 얼마 안 돼 알 수 있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을 배운다는 명목하에 우리는 방과 후 단실에 남아 다양한 훈련을 소화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기합과 몽둥이 세례에 할당되었다. 우리는 허구한 날 푸시업과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박고 뒷짐지고 있는 일명 ‘원산폭격’ 이란 기합을 받았는데 그 기합으로 가뜩이나 머리가 안 좋은 우리는 정말 돌 대가리로 변해 갔고 마침내 그 자세로 이삼십분은 거뜬히 잠을 청할 수 있는 득도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선배는 하나님과 동창이라는 구호 아래 선배로부터 몽둥이 세례는 일상이 되었다. 사이비 종교처럼 학대가 학습이 되다 보면 학대도 사랑으로 믿게 된다. 간혹 선배로부터 몽둥이찜질이 없는 날이면 우리는 화장실 가서 밑 안 닦고 나온 찜찜한 기분으로 집에 가야 했고 뭔가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하나님과 동창인 선배의 노래 한 곡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학교 앞 구멍가게로 달려가 선배가 좋아하는 음료를 사 와야 하는 벌칙을 받곤 했는데, 나날이 빨라지는 우리의 동작만큼이나 선배의 노래 솜씨 또한 일취월장하여 우리는 한 번도 미션을 완성해 본 적이 없었다. 갈수록 더해지는 훈련의 강도에 이탈하는 친구들이 생기면 우리는 어김없이 그들을 체포해서 단실로 끌고 와야 했다. 마치 교도소에서 탈옥한 탈주범을 잡듯이. 그들의 거주지는 물론 분식점, 빵집, 당구장까지 샅샅이 이잡듯이 뒤졌다. 그 와중에 우연히 길가에서 여학생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어떻게 해 볼 요량으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김우중 씨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정말 많다.’ 고된 훈련과정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선서식, 학교 축제인 석전 등을 무사히 치러 내며 2학년이 될 날만을 학수고대했다. 내년이면 우리도 선배들로부터 받은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새로 들어올 나의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몇 배로 베풀 수 있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그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에 계속) 보석상식 47: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블러드 다이아몬드 혹은 피의 다이아몬드는 전쟁 중인 지역(주로 아프리카)에서 생산돼 국제 협정을 어겨가며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판매되는 다이아몬드를 지칭합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거래로 의심되는 대표적인 나라로는 앙골라, 라이베리아, 코트디부아르, 콩고 민주 공화국, 짐바브웨 등이며, UN은 1998년 처음으로 전쟁자금으로 유용되는 다이아몬드에 대해 문제 제기를 시작했지만, 블러드 다이아몬드 생산과 통제를 위해 협의체가 구성된 것은 다이아몬드 생산업자들의 노력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2005년 남아프리카 킴벌리에선 다이아몬드 생산국들이 참가한 회의가 열렸으며 이때 다이아몬드를 구입한 소비자가 본인들이 구입한 다이아몬드가 폭력과 연관되지 않았음을 증명받아야 한다는데 동의하게 되었고, 그 후 회의에서 다이아몬드 수출과 수입에 있어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가 발의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런 문제점에 대한 전 세계적인 인식을 높였고, 다이아몬드 유통에 있어 벌어지는 서 아프리카의 비극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5-04

[보석상의 보석이야기]남자가 가지면 저주를 받는다는 다이아몬드

나는 외아들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부터 이모, 고모, 심지어 내 아랫것들, 누나들까지 내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떨었다. 과자를 사면 반은 내 것이고, 반은 나 때문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나머지 4명의 무수리들 것이었다. 식탁에 생선이 오르면 몸통은 내 것이요 머리와 꼬리만 그녀들의 것이었다. 갓 만들어 낸 따듯한 밥은 언제나 내 몫이어서, 나는 어렸을 때 찬밥이 무슨 뜻인 줄 몰랐다. 나의 이런 유년기 환경은 세상은 살 만한 곳이란 걸 일찍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은 집착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알고 있던 관심은 간섭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불우한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친구들과 뭐라도 하려 하면 누나들은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나쁜 길로 빠진다고 못하게 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엄마에게 빠짐없이 고자질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과 여동생이 나를 버리고 이란으로 떠나 버린 일 년 동안 나는 서커스단의 동물처럼 누나들에게 철저히 사육되고 조련되었다. 전에 나는 누나들도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 자기네끼리는 뭐라 부르는데 나는 그들을 그냥 ‘야’라고 불렀다. 내가 누나들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골방에 끌려가서 개 패듯이 뒈지게 얻어맞은 후였다. 그때야 누나들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름 뒤에는 누나 자를 꼭 붙여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중학생이면 밥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누나들의 격려에 밥하는 법도 배웠고 누나들이 늦은 밤 시장기를 느낄 때면 라면이나 떡볶이도 만들 줄 아는 센스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쫄따구는 지구를 생각해 밥풀 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핥아 먹어야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당시 대학생이던 큰누나는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는데, 캠퍼스 커플로 만난 지금의 큰 매형에게 푹 빠져 내 용돈 주는 것도 잊어버리고, 주는 액수도 점점 줄어갔다. 나는 모자라는 용돈을 보충하기 위해 내가 아직도 우리 집에서 왕인 줄 알고 있는 다른 친척 집을 전전하며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라는 맹인 가수 조용복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이란에서 돌아오시는 날 나는 그동안의 설움을 날려 보내고 너희 셋 무수리들을 가만두지 않겠노라 복수를 다짐하면서 김포공항으로 나의 구세주를 마중 나갔다. 환영장의 자동문이 열리고 나의 구세주는 머리에 후광을 발하며 나타났고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는 나를 보시더니 “우리 아들 엄마 없는 일 년 동안 어른이 다 되었구나.” 하시며 흐뭇해하셨다. 그리고 나는 지난 일 년의 노예생활에서 겪은 모진 고초를 엄마에게 고발하려는 순간 나는 세 무수리 아니 세 누나들의 눈빛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골방의 추억을 떠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 공부보다 더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웠던 지난 일 년간의 만행들을 홀딱 까먹게 되었다. 무수리들을 징벌하려는 의지는 어느새 누나들과 더불어 “차카게 살자.”로 바뀌었고 내 두 손은 누나들의 손에 잡혀 차에 올랐다. 보석상식 46: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이아몬드 코이누르(KOH I NOOR) 5000년 전의 기록에서부터 나오는 이 다이아몬드는 서기 1304년부터 역사서에 코이누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코-이-누르는 페르시아어로 ‘빛의 산’이라 뜻으로 이것을 가지면 “ 원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된다”는 전설과 함께 “남자가 가지면 저주를 받는다” 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무려 105캐럿에 달하고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코이누르는 본래 인도의 카카티야 왕조의 것이었지만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마지막엔 인도를 침략해 식민지로 만든 영국의 손에 떨어지게 됩니다. 당시 인도를 지배한 시크 왕조의 마지막 왕인 둘레프 싱은 영국을 따르겠다는 충성의 뜻으로 빅토리아 여왕에게 코이누르를 바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인도의 왕 둘레프 싱의 나이는 13세에 불과해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인도 정부는 왕의 의지대로 영국에 바친 것이 아니라 영국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것이라 주장하게 되고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합니다. 남자가 가지면 저주를 받는다는 속설 때문에 영국 왕실은 빅토리아 여왕에서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인 퀸 마더(QUEEN MOTHER)로 이어져 내려오다 2002년 퀸 마더의 사후 지금은 타워 오브 런던에 보관 전시됩니다. 영국은 약탈한 문화재는 돌려줘야 한다는 법이 있지만 2010년 캐머런 총리는 있을 수 없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코이누르를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런 속사정에는 코이누르를 돌려주게 되면 영국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온 수많은 문화재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하는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4-27

[보석상의 보석이야기]기생에게 신라금관을 씌우고 술판을 벌이다

옛말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오십 중반이 되어보니 그 말이 절절히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하는 말을 내 귀로 듣고 있노라면 내 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아내는 내 걷는 모습이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 아이들은 내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로 착각한 적도 있다. 나는 어릴 적 주말이면 아버지를 따라 시내도 나가고, 산으로 등산을 가곤 했다. 나는 아버지 옆에 없어서는 안 될 자석 같은 존재였다. 어렵게 얻은 귀한 아들이라 아버지는 유난히도 나를 이뻐하셨고 그래서 늘 나를 옆에 끼고 다니셨다. 어느 날인가 나는 아버지와 놀이동산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어려서 이유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아버지와 택시기사 사이 실랑이가 벌어졌고 마침내 기사의 입에서 담기 힘든 쌍욕이 터져 나왔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 상황이 당황스럽고 몹시 화도 났지만 아버지는 화를 꾹 참으시며 별다른 대꾸 없이 차에서 내리셨다.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아버지가 슈퍼맨처럼 택시기사를 혼내 줄 거라 기대했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나의 상상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도 창피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세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의 행동은 백번 옳았다. 자식 앞에서 기사와 똑같이 쌍욕으로 맞대응했다면 비록 아버지가 슈퍼맨처럼 기사를 물리쳤더라도 나에겐 더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장독대에 올라 칼싸움 놀이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나는 뒤로 물러서다 방범용 쇠창살에 옆구리를 찔렸다. 옆구리에 뚫린 구슬 크기의 구멍을 확인하고 나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나는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후 집 안방에 누워 있었다. 정신이 들면서 서서히 공포가 밀려왔다. 낮에 얻은 상처의 고통이 아니라 퇴근해서 오실 아버지께 혼날 걸 생각하니 막연히 무서웠던 것이다. 아버지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나는 죽은 듯 자는 연기를 시작했다. 아버지 앞에서 눈을 말똥 말똥 뜨고 있으면 한대 얻어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오셔 내 상처를 살피시더니 말없이 닭똥 같은 눈물은 흘리시며 나를 한없이 어루만졌다. 나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때 영화를 보여 주겠다는 아버지의 꾀임에 빠져 단성사 근처의 비뇨기과에서 남자로 거듭나기 위한 성형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완강히 거부하는 나를 십분이면 끝나니 수술받고 영화 보러 가자는 아버지의 달콤한 속삭임에 또 한번 속아 강제로 수술대에 올랐다. 할리우드 영화 ‘7인의 신부’를 볼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수술을 받고 있는데 옆에서 수술을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의사는 나를 수술하다 말고 젊은 간호원과 나, 둘만을 남긴 채 아버지의 응급처치를 위해 옆방으로 이동했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의사는 성형부위를 꿰매다 말고 나가버렸고 나는 그녀와 어정쩡하게 둘이 남았다.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의 몸에 그것도 중요한 그곳에 칼을 들이대자 옆에서 지켜보다 기절해 버리신 거다. 나는 그날 영화를 못 봤다. 아버지는 늘 내 상상과는 다른 리액션을 보여 주셨다. 그것이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걸 나는 내 자식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팔십 중반이 되신 나의 아버지, 어릴 때 막연히 무섭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와 지금은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화하며 농담도 주고받는다. “니가 아직 철이 안 들어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에게 나는 아버지 오래 사시라고 철들고 싶어도 못 든다고 맞받아친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자란 내 딸들도 아빠인 나를 친구처럼 대한다. 하지만 가끔은 딸들의 구박이 지나쳐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다. 스물네 살에 미국에 와 올해 만 삼십 년이 된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구제불능인 내 영어 발음은 항상 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지만 나는 그래도 항상 웃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말한다. “까불지마! 요놈들아, 그래도 이 안되는 영어로 미국에서 너희들 이만큼 키워 났거든!” 오늘따라 아버지가 유난히 생각난다. 보석상식 45: 기생에게 신라금관을 씌어 놓고 술판을 벌인 고이즈미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금관 국가입니다. 세계에 현존하는 고대 금관은 총 10점인데 그중에서 신라금관 6점과 가야 금관 1점이 우리나라 것입니다. 보존상태도 우리의 것이 가장 완벽하다고 합니다. 신라금관이 발견된 곳은 1921년 경주의 대릉원 바로 옆인데 주민이 집터를 파다가 금관을 비롯해 수많은 유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일제 당국은 제대로 된 기록도 없이 고고학 발굴사에 천추의 한을 남기며 단 4일이라는 짦은 시간에 발굴을 마칩니다. 이곳은 금관이 발견된 곳이라 하여 금관총이라 이름 짓습니다. 1500년 전 선조의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신라금관은 이렇게 아픈 역사 속에 발견되면서 또 한번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1935년 평양 박물관은 경성 박물관으로부터 서봉총 금관을 대여받아 특별전을 열었는데 전시회를 마친 뒤풀이 술자리에서 일본인 관장 고이즈미란 자는 한 기생의 머리에 금관을 씌워놓고 흥청망청 술판을 벌이는 망동을 벌인 것입니다. 이것은 문화재에 대한 지워버릴 수 없는 망국의 수모인 것입니다. 나라를 잃으면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도 홀대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4-20

[보석상의 보석이야기]폼페이 최후의 날에 보석을 움켜쥐고 죽은 여인

가끔 나는 보석을 보고 있노라면 보석이 인간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보석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 길어야 백 살인데 보석에 비하면 너무도 짧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은 보석을 소유하길 원한다. 아마도 죽지 않는 보석의 영원함이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 산다. 우리도 언젠가 세상에 한 줌 재로 남을 거란 걸 인지하고 산다면 아마도 욕심부릴 일도 없고 악착같이 소유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장례식에 참석할 때 누워있는 시신의 모습을 보고 저 모습이 내 모습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먼저 간 이를 슬퍼하지만 장례식이 끝나면 언제 슬퍼했었나 싶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보석 일을 하다 보니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들을 통해서 느끼는 건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들을 지키려는 그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수많은 난제를 뚫고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 가며 이룬 부이기에 그만큼 애착도 크다. 일전에 팔십을 바라보는 친한 손님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앞만 보고 죽으라고 일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이 나이가 되어 보니 가진 것이 별로 필요가 없단다. 그리고 지난날 못 한 것들이 후회가 된다고 하신다. 부인과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 본 적이 없고 가족을 위해서 지낸 지난날의 기억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력이 없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더 많은 시간을 가족을 위해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쓰지도 못하고 죽을 돈을 왜 그리도 욕심을 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신다. 세상을 사는데 돈이 있으면 많은 부분 편리하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와 가족을 생각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과의 시간도 돈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다. 조금만 있다가, 나중에 하면서 우리는 많은 부분 가족이 기다려 주기 바라며 희생을 강요한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와 친한 선배는 나에게 틈만 나면 이런 말을 해 준다. 물들어 오면 노 젓고, 손뼉 칠 때 떠나라고.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때가 되면 그 일에서 손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욕심도 접을 줄 알아야 한다는, 참 쉬운 말 같은데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보석상식 45: 로마시대의 반지 로마시대 로마인들은 반지를 매우 즐겨 끼었다고 하는데, 그 반지로 그들의 부와 신분을 동시에 나타냈다고 합니다. 최고 신분인 원로원의 원로는 금을, 일반 귀족은 은으로, 노예와 같은 천민들은 철로 된 반지를 만들어 끼웠다고 합니다. 로마시대의 반지에는 마치 뱀이 손가락을 휘감고 있는 디자인이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뱀이 다산과 정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폼페이 최후의 날에 보석을 움켜쥐고 죽은 여인의 유골이 나타나자 이것을 지켜본 발굴단장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일생을 한 남자의 여자로 사랑받았을 그녀를 생각하니 보석이 더욱 빛이 납니다.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로 묻혀 버린 그들의 소중한 보석들이 천년의 세월을 돌아 되살아 났습니다. 짧은 인생사에 그들의 영화를 놓지 못하고 움켜쥔 체 죽어 가는 영혼이 얼마나 많을까! 이얘기 또한 나의 얘기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인생사를 단편으로 보여 줍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4-13

[보석상의 보석이야기]세계에서 가장 비싼 달걀, 파베르제 '이스터 에그' 탄생

싸움의 기술에는 선방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이 전혀 생각지 못할 때 상대방의 치명적인 급소를 먼저 치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 나는 친구로부터 선방을 맞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한방은 운동장이 침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몸소 깨우치게 해 주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체구가 왜소한 같은 반 친구는 선방의 달인이었다. 나는 그 작은 아이가 왜 교실에서 캡이 된 줄 그땐 몰랐다. 싸움은 덩치와 기술로 하는 줄 알았는데 그를 보면서 싸움은 강심장으로 한다는 걸 알았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간결하며 임팩트 있게 야수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급소를 노리는 것이다. 내 주먹을 맞고 상대방이 어떻게 될까라는 자비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단 한방으로 모든 걸 끝내야 한다. 나는 그의 선방 한방에 죽다가 살아났고 그 후로 그 작은 애는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감히 복수하겠다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 했다. 아니, 그를 피해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석의 '보'자도 모르고 시작한 에메랄드 비즈니스, 나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이 계통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얻어 맞았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가 돈을 뜯겨 본적도 있고, 시세보다 싸다면 의심해 봐야 하는데 욕심에 눈이 멀어 가짜도 사봤다. 그래도 치명적인 한방이 없었기에 나는 그들의 무수한 잔매를 견뎌가며 에메랄드를 구입해서 수출까지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어릴 때 맞았던 한방의 기억이 내 무의식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나는 여러 경로로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받기 시작했다. 에메랄드를 콜롬비아에서 외국으로 수출하게 되면 수출한 만큼의 돈이 외국에서 콜롬비아로 은행을 통해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이때 수출한 에메랄드의 액수를 실제보다 부풀려 더 많은 돈이 콜롬비아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머니 라운드리다. 머니 라운드리의 대가는 정말로 달콤한 것이다. 특별히 에메랄드를 팔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물건을 계속 수출하면 한 달이면 몇십만 불의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지금이야 국가 간의 금융거래가 강화되 꿈도 못 꾸는 얘기지만 911 뉴욕 테러가 발생하기 전만 해도 국제 금융거래는 느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인간인데 이런 유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국에 IMF가 터지면서 에메랄드 수출이 어려워질 때 나 또한 이런 유혹에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현실에 닥친 시련이 너무 버거워서 잠시 내 머릿속의 악마를 밖으로 끄집어 낼까도 생각했지만 나를 이런 유혹에서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만의 의지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돌아갈 가족이 있었다. 무엇을 하든 믿고 따라 주는 아내가 있었고 세상에서 우리 아빠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의 세 딸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식을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같이 일어나 평생을 기도해 온 우리 어머니가 계셨다. 나는 INTENTION(의도)를 믿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마음을 갖고 다가 온다면 그 마음을 굳이 말로 표현 안 해도 나에게 좋은 카르마(KARMA)로 전달될 것이고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 한다면 그 기운이 나를 자각하게 만들 거란 걸. 그래서 옛말에 '마음으로 죄짓지 말라'는 말이 있다. 몸으로 짓는 죄만이 죄가 아니라 나쁜 마음 그 자체도 죄라는걸. 보석상식 44: 파베르제(FABERGE) 이스터 에그의 탄생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더 3세는 유럽 출신 부인, 황후 마리아 페오도르브나의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부활절 선물로 러시아의 보석 명장 파베르제에게 보석으로 장식된 이스터 에그를 주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뜻밖의 선물은 황후를 감동시키게 만드는데 이를 계기로 황제는 황후를 위해 연례행사로 파베르제에게 이스터 에그를 주문하게 됩니다. 알렉산더 3세 사후에도 그의 아들 니콜라스 2세는 황실의 전통으로 그의 엄마와 그의 부인에게 이스터 에그를 선물하게 되는데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황실의 전통은 멈추게 됩니다. 파베르제는 32년간 50개의 이스터 에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8개는 러시아 혁명때 행방불명되었고 남은 42개만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황후를 사랑하는 황제의 마음이 새로운 보석을 탄생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것입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4-06

[보석상의 보석이야기]아내에게 진짜 사랑 받는 방법은?

보석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나도 속물이 다 되어간다. 비즈니스 특성상 빠른 시간 안에 이 손님이 돈은 얼마나 많은지, 보석에 관심은 있는지, 그 물건이 마음에 들면 오늘 살 건지, 사고 난 후 꾸준히 내 단골손님으로 남을지를 파악해야 한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남자의 눈으로 바라본 것일 뿐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보안상 많은 보석 가게가 문을 잠그고 비즈니스를 한다. 어떤 분들은 초인종을 눌러야 문을 열어주는 시스템에 불편을 느낀다. 보석상 입장에선 당연히 보안상 문을 잠그고 할 수밖에 없다. 값비싼 물건을 쇼 케이스에서 꺼내 보여 주어야만 하기 때문에 보석상뿐 아니라 손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들어오면서 잠긴 문을 트집 잡는다면 그 사람은 손님이 될 확률이 별로 없다. 어떤 분들은 가게에 들어 오자마자 무작정 물건값을 물어본다. 그런 분들은 100% 안 사는 분들이다. 물건에는 관심이 없고, 물건값만 알고 싶다는 소리로 들린다. 물건을 사러 들어온 손님들은, 물건에 관심을 갖고 찬찬히 살핀 후 물건을 착용해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물건이 나한테 어울리는지를 확인하고 물건값을 물어본다. 내가 처음 보석 소매를 시작한 것은 백인들이 사는 팜 스프링스 지역이다. 처음 소매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어떤 사람이 실수요자고 어떤 사람이 아이쇼핑을 하는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그래서 모델같이 예쁘고 화려한 사람이 들어오면 큰손이라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 반면 외모가 평범하면 눈요기나 하고 가겠지 하고 시큰둥했다. 하지만 의외로 큰 돈을 쓰는 속칭 ‘큰손’은 동서양을 떠나 외모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사람들이다. 삶이 바빠 자기 자신을 꾸미기보단 가족과 일에 몰두하기에 본인을 위한 시간이 별로 없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그들의 부를 이루었기에 보석을 구입하는데 있어서도 당당하고, 남편들 역시 열심히 산 아내를 생각해서 기꺼이 사주고 싶어 한다. 외모가 화려한 사람은 보이는 것이 전부일 때가 많다. 속이 허하니 밖이라도 화려하게 꾸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매장에 있는 물건을 살핀 후 사진을 찍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 대부분 이런 분들은 누군가에 보여주고 당장이라도 살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15년간 소매업을 하면서, 사진 찍고 다시 와서 사 가신 분이 한 분도 없다. 다른 곳에 보여 주고 이렇게 만들면 얼마가 드는지 물어 보려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아냐고요? 저한테 그런 분들이 많이 오거든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진 찍는 걸 허락하지 않지만 그래도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여자들은 값을 떠나 디자인이 우선 마음에 들어야 관심을 갖는데 반해 남자들은 같은 값이면 더 큰 사이즈를 좋아한다. 여자는 감성적인데 반해 남자는 경제적인 동물이다. 가끔씩 아내의 선물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는 남자 손님들이 있는데 내 입장에서는 쉬운 손님이다. 남자들은 물건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쓰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대비 괜찮은 물건을 권하면 대부분 쉽게 산다. 아내에게 진짜 사랑 받는 방법은 아내를 가게에 데리고 와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게 한 후 본인은 멋있게 돈만 내면 된다. 보석상에게 있어 가장 큰 단골손님은 누굴까? 돈 많은 부자의 안방마님? 노노노. 보석을 좋아하는 부잣집 바깥양반이시다. 고가의 보석은 아무리 돈이 많은 여자라도 남편의 동의 없이 쉽게 구입하지 못한다. 아내는 좋아하는데 남편이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나 얻어 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남자가 보석을 좋아하는 경우는 여자가 원치 않아도 마음에만 들면 계속 살 수 있다. 이런 경우 남자가 돈까지 지불하고 갔지만 부인이 와 물러 달라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보석을 과연 좋아할까 의아해하는데 생각보다 보석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다. 남자도 좋아하는데 여자까지 보석을 좋아한다면 이런 손님은 보석상에게 있어 최고의 손님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지금까지의 얘기는 전적으로 내 개인의 생각이다. 보석상식 43: 세계에서 가장 큰 엘로우 다이아몬드, 티파니 엘로우 오늘날 현존하는 가장 큰 엘로우 다이아몬드 중에 하나인 티파니 엘로우는 뉴욕 맨허튼 Fifth Avenue의 티파니 매장에 전시되어 있다. 1877년에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원석의 원래 무게는 287.42 캐럿이었지만 연마 과정을 거쳐 지금의 무게인 128 캐럿이 되었다. 1877년 찰스 티파니에게 팔렸으며 티파니 엘로우는 지난 140년 동안 단 2번만 착용하게 되었는데 한 번은 1957년 미세스 화이트하우스가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에서 열린 티파니 파티에서 착용했고, 두 번째는 1961년 오드리 햅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라는 영화 홍보를 위해 착용한 것이 유일하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2016-03-30

[보석상의 보석이야기]마리 앙투와네트를 죽음으로 이끈 다이아몬드

어느 날 나는 서랍을 정리하면서 예전에 사용했던 여권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잦은 해외 출장으로 나는 10년에 한 번만 갱신하면 되는 여권을 두 번씩 받은 적도 있다. 그것도 일반여권의 두 배 분량이 되는 익스텐션 여권으로. 나의 지난 23년간의 여행 기록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생각하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과거의 기억들로 설렘과 함께 흥분되었다. 한 장 한 장 빚 바랜 여권을 넘길 때마다 입국심사 때 받았던 무수한 스탬프들이 페이지에 빼곡히 차 있었다. 스탬프에 찍혀 있는 나라, 입국 날짜를 보면서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니 즐거웠던 일들도 많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탬프는 내가 콜롬비아에 입국할 때 받은 것이었다. 그 수를 세보니 얼추 130번이 넘었다. 지난 시절 콜롬비아를 내 집 드나들 듯이 다녀왔지만 일 말고 다른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니 일 아닌 다른 것을 해 본 것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주말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그것도 어쩌다 보고타에서 두 시간 떨어진 저지대를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콜롬비아 제2, 제3의 도시인 깔리, 메데진도 가 본 적이 없고 카리뷰의 역사 도시며 유명한 휴양지인 카르타헤나나 산 안드레스도 한번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심지어 콜롬비아를 방문하면 꼭 가 봐야 하는 대통령궁, 금 박물관,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화가 보테로의 뮤지엄이 내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지척에 있건만 나는 작년에 그곳을 처음 가 보았다. 무엇이 내 삶을 이렇게 여유 없이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콜롬비아에서의 생활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에메랄드를 취급하다 보니 항상 안전과 보안에 신경 써야 했고, 가끔씩 주말마다 도둑이 사무실 벽을 뚫고 금고를 털어 갔다는 뉴스를 접하다 보니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때 불안한 마음에 주말이면 구입한 에메랄드를 아무도 몰래 사무실 금고에서 꺼내 내가 머물던 아파트로 가져와 내 베게 밑에 숨겨두고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에메랄드를 정식 통관하는데도 불구하고 잦은 콜롬비아 출입은 미국 세관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들의 괴롭힘은 한때 내가 이 비즈니스를 계속해야 하나 마냐를 고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급기야 나는 변호사를 고용해 정식으로 미 세관에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미 세관의 사과를 받아 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재발 방지 편지를 세관으로부터 받고 일단락되었다. 나중에 내 변호사에게 들은 사실이지만 나를 잘 아는 누군가의 모함으로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한다. 어떤 한국 사람은 보석을 수입한다고 하면 마치 내가 밀수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보석에 대한 관세가 높기 때문에 많은 양의 귀금속이 정식 절차를 통하지 않고 몰래 들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과 달리 보석에 대한 관세의 장벽이 없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 오는 어떤 보석이든 관세가 굉장히 미미하거나 아예 없어 통관 브로커에게 소액의 통관비용을 지불하면 정식으로 수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브로커 비용 몇 백 불을 아끼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바보 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식으로 수입해야만 은행을 통해 수입 대금을 콜롬비아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많은 현금을 몸에 지니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남들은 어떡하다 내가 비즈니스를 미국도 한국도 아닌 남미 대륙 콜롬비아에까지 가서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처음에 에메랄드란 보석은 내가 환상을 꿈꾸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 환상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르시는 분들은 내가 보석을 한다고 하니 어머 어마하게 많은 돈을 번다고 오해한다. 액수도 클뿐 아니라 남는 이익도 많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려면 학교나 학원에 가서 수업료를 내야 하는데 나 또한 보석을 알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보석을 배우기도 전에 냉엄한 인간 사회의 현실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보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자신할 때 인생의 철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내가 땀 흘린 만큼 버는 것이 진리인 것 같다. 보석상식 42. 프랑스 역사상 희대의 사건이며 프랑스 혁명 발발의 계기가 된 마리 앙투와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의 발단은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 때로 거슬러 갑니다. 루이 15세는 그의 애첩 마담 뒤바리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려 600개가 넘는 값비싼 다이아몬드로 목걸이를 주문하게 되는데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으로 목걸이를 팔 수 없게 되자 이 목걸이를 만든 보석상 주인 뵈머는 새 국왕의 아내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목걸이를 사 줄 것을 간청합니다. 하지만 당시 왕실의 재정상태로는 그 목걸이를 살 수 있는 여력이 없었고 그의 제안은 거절됩니다.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 제작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사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로 인해 프랑스 국민들은 이 목걸이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른 루머가 프랑스를 뒤덮게 되는데 사치스러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국민의 굶주림은 외면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면서 국가 재정을 더욱 파탄에 이루게 한다는 루머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 후 혁명정부는 앙투와네트를 심문할 때 목걸이에 대해 물어봤다고 합니다. 사치의 대명사였던 마리 앙투아네트, 목걸이 사건은 그녀와 무관했지만 그녀의 사치로 인해 오해받은 사건으로 그녀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 인생무상이지만 인과응보인 것 같습니다. HARRY KIM (K&K FINE JEWELRY) kkfinejewelry@gmail.com - 보석상의 보석이야기 시리즈 전체 보기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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